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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업은 서정적이고 고요한 풍경에서 시작해 추상이 되기도 하고, 풍경에 머무르기도 한다. 주로 새벽 녘 혹은 해 질 녘의 호숫가와 산세를 그려낸다. 외국에서 지내다 잠깐 한국 본가에 갔을 때 동생과 강아지들을 데리고 새벽 산책을 한 적이 있다. 해와 달이 오가는 무렵이 근사한 집 앞 호숫가를 걸으며 그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그리운 순간을 그려낸 것이 내가 해온 회화 작업의 시작이었고, 지금은 더 이상 집이 그립지 않음에도 여전히 산이나 호수 같은 정적인 풍경을 그리고 있다. 

 

흙탕물을 불순물이 가라앉을 때까지 가만히 두듯, 풍경에서 비롯한 심상을 그리다 보면 결국에 닿는 것은 고요함이다. 근작을 작업하면서는 뭉개진 형태 위에서 춤을 추는 느낌이다. 형태 보다는 색과 붓터치를 가지고 노는 방식이고,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해방감이 있다. 비단은 배접하지 않았을 때 뒤가 비칠 정도로 투명하고 흩날리는 느낌이 있어 사라질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비단에 수채를 할 때에는, 비단이 마르며 연해지는 발색을 기다려야하고, 모든 터치가 레이어로 쌓여 이전의 흔적이 비친다. 여러 겹으로 완성되는 작업이므로 지나간 색과 붓의 흔적이 남는다.

 

캔버스에 아크릴 작업을 할 때는 색을 얹는 그대로 발색이 되어서 생기는 카타르시스가 있지만, 덧칠을 하면 이전의 흔적이 싹 사라지고 마티에르로만 남는 느낌이 들어 그 과정이 사뭇 폭력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반면 비단은 아무것도 지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포용력 있는 미디엄이다. 이러한 속성은 내가 삶에 대하여 갖는 수용적 태도와 닮아 있다. 

 

어떠한 흔적도 흠이 아닌 개성이며 그 자체로 온전히 존재하길 바라는 마음가짐은 살아가는 데에도 작업을 할 때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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